自詠(내 모습)
권호문(1532~1587)
偏性獨高尙
卜居空谷中
囀林鳥求友
落砌花辭叢
簾捲野經雨
襟開溪滿風
淸吟無一事
句句是閑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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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난 성격 홀로이 고상함을 지켜.
텅 빈 골짜기에 집 짓고 살지.
숲속엔 벗 찾는 새소리 맑고
섬돌엔 나풀나풀 어여쁜 꽃잎들.
주렴 드니 들에는 지나가는 빗줄기
옷깃 가득 안겨드는 시원한 냇바람.
일없이 청아한 시 한 수를 읊으니
구절구절 이리도 참 한가롭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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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朝鮮時代) 중기(中期)의 문인(文人), 권호문(權好文)이 쓴 이 시(詩)를 읽다보면, 피인지사(辟人之士) 와 피세지사(辟世之士) 라는 말이 생각 난다. 여기서 피인지사란 뭇사람들을 피하여 조용히 지내는 사람이요, 피세지사는 세상을 피하여 홀로 은둔해서 사는 사람이다. 문득 생각나는 구절이 있어서 아래에 몇자 적는다.
논어(論語)의 미자편(微子篇)은 주로 여러 현인들의 출사(出師)와 은거(隱居)에 관한 글들인데 그중에는 장저(長沮)와 걸익(桀溺) 이라는 흥미로운 두 인물이 등장한다. 하루는 이 두 사람이 함께 밭을 갈고 있는데 근처를 지나가던 공자(孔子)가 자로(子路)를 시켜 나룻터가 어디인지 묻게 한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그 두 위인이 그저 시골에서 땅이나 일구며 사는 무지렁뱅이 촌부(村夫)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름도 실제 본명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자로가 장저에게 먼저 다가가 길을 물었는데, 그는 수레에 남아있는 자가 누구냐고 묻고서, 자로가 '공자'라고 대답하자, 그는 엉뚱하게도 '공자는 이미 나루터를 안다' 라고 말한다. 길을 몰라서 물어보는 중인데 '공자가 이미 길을 알고 있다'라고 하니, 뭔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 펼쳐졌다. 그렇지만, 사실 이것은 장저가 공자를 향해 비난의 시위를 당긴 것이나 다름없다. 즉, "그자가 공자라면 학식도 많고 천하에 올바른 도(道)를 실현하겠다고 돌아다니는 위인이라는데, 그렇다면 자기가 갈 길 정도는 스스로 잘 알지 않겠느냐?" 하는 비꼬는 언사다. 당시에 예순을 넘긴 공자가 변변한 친구도 없이 백수로 십수년 동안이나 세상을 헤메고 다니니 이를 두고 장저가 나무란 것이다. 한마디로 '네 갈 길은 제대로 알고 다니나?' 하는 식이다. 아직 영문을 모르는 자로가 이번에는 걸익에게 다가가 묻자, 그 역시 묘한 답변을 한다. "천하에 흙탕물이 뒤덮어 흐르는 것을 대체 누가 막을 수 있단 말인가?" 라고 말한 뒤, 자로에게 이르기를 '피인지사(辟人之士) 따라다니느니 차라리 피세지사(辟世之士)를 좇는 게 어떠한가?' 라고 말한다. 여기서 '피인지사'는 당연히 공자를 지칭한 것으로, 뭇사람들은 소인배라하여 피하면서 오직 자기와 뜻을 같이 할 군주를 찾아나선 것을 빗댄 것이다. 그리고는 차라리 '피세지사'인 자기들처럼 더러운 세상을 피해서 은자로 사는 게 어떠냐?' 하고 떠보는 것이다. 자로가 공자에게 돌아와 위와 같이 고하자, 공자가 낙심하여 한참을 망연히 있다가, 이렇게 말한다. “새와 짐승들은 인간과 더불어 살아갈 수 없나니, 내가 이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면 그 누구와 어울리겠는가? 천하에 구할 도(道)가 있다면, 나는 바꾸지 않으리라.”
[ 論語, (微子 6)]
長沮桀溺耦而耕 孔子過之 使子路問津焉
長沮曰 夫執輿者爲誰 子路曰 爲孔丘 曰 是魯孔丘與 曰 是也 曰 是知津矣
問於桀溺 桀溺曰 子爲誰 曰 爲仲由 曰 是魯孔丘之徒與 對曰 然
曰 滔滔者天下皆是也 而誰以易之 且而與其從辟人之士也 豈若從辟世之士哉 耰而不輟
子路行以告 夫子憮然曰 鳥獸不可與同羣 吾非斯人之徒與 而誰與
天下有道 丘不與易也
결과론적으로, 공자는 자기의 뜻을 끝내 이루지 못했고, 그의 나이 65세에 이르자 하는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간다. 때로는 '상갓집의 개' 라는 조롱을 듣고 '자기 먹을거리 한톨 재배하지 않는 자가 무슨 놈의 선생이냐?' 는 온갖 타박을 받으면서도 군자의 길을 걷고자 했던 공자를 그저 '어리석노라' 폄하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장저와 걸익 또한 그르지 않았고, 지식인으로서 비겁하다 욕할 수는 없다. 더구나, 어떤 사회가 아주 더럽고 우매한 사회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세상에 은자가 많을 수록, 그 사회는 매우 불행한 사회이고, 소수의 편익과 안영[安榮]에 반하여 대다수의 구성원들이 고통 속에서 버거운 짐을 지고 살아야만 하는 불공평한 사회이다. 물론 그 사회가 균형과 안정성을 향해 제대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결국 붕괴한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요, 물리 법칙이다.
ㅡ 2012 초여름, 강남의 어느 북카페에서....ㅡ
ㅡ A Bookcafe in Gangnam, Seoul , Korea ㅡ |
King Crimson -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1969)
King Crimson - I Talk to the Wind(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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